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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달라진 뉴스 시대, 소통방식 바꿔야 불신 해결된다

    기사 작성일 2015-10-12 20:49:20 최종 수정일 2015-10-12 20: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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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욱(국민일보 온라인뉴스부장)
    고승욱(국민일보 온라인뉴스부장)

    [특집 정치불신과 국회] - 정치불신과 매체의 변화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바꾼다. 평범하지만 당연한 이 말은 2015년 한국의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신문이 발행된 이후 요지부동이었던 기사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TV가 생활의 중심에 들어선 이후 변화가 없었던 시청자들의 뉴스 소비패턴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한 언론사 간부가 출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는다는 내용의 ‘정보보고’가 기업 홍보맨 사이에서 퍼진 적이 있다. 한참 전 일이지만 아직도 식사자리에서 종종 오가는 이야기다. 출근하다가 봤다는 사람이 여럿 나왔는데, 안경을 벗어 머리 위에 얹고 정말 열심히 신문을 읽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신문사인지, 누구인지가 아니다. 그게 왜 이야깃거리인지가 포인트다.

     누가 봐도 스마트폰과 포털사이트를 통해 제공되는 뉴스가 대세다. 종이에 인쇄된 뉴스는 어색해졌다. 앞에 이야기는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뉴스 소비패턴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누구는 지하철에서 신문을 펴놓고 읽는다”라는 말이 화제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 뉴스 소비자는 ‘기사’보다는 ‘매체’를 먼저 택했다. 신문을 정기구독하거나 가판대에서 돈을 주고 사야 뉴스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사’를 먼저 택한다. 선택의 과정에서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 화면에 나열된 수많은 기사 가운데 하나를 골라 읽는 방식이다. 냉장고를 살 때 특정기업의 대리점이 아니라 수많은 브랜드가 뒤섞인 대형마트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네이버, 다음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는 스마트폰으로 제공되는 뉴스의 경우 매체 이름을 아예 노출시키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제목만 보고 뉴스를 선택하게 된다.

     이 같은 소비행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뉴스의 형식을 바꾸고 있다. 종이에 인쇄된 기사는 집중도가 매우 높다.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100년 넘는 노하우가 집약돼 있다. 여기에 익숙한 ‘신문쟁이’에게 온라인 뉴스는 달갑지 않다. 답답하다. 크기와 위치는 천편일률적이다. 사진과 그래픽이 들어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부제를 활용하기 어려워 제목의 수에 제한이 있다. 기사를 길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네티즌들은 원고지 5장을 넘는 기사는 끝까지 읽지 않는다. 그래서 기사 포맷이 달라진다.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제목이 중요하다. 굳이 글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진과 동영상이 강조된다. 과거에는 기사에 사진을 첨부했지만 이제는 사진에 기사를 덧붙인다.

     더 중요한 것은 형식의 변화가 뉴스의 내용을 바꿔간다는 점이다. 20세기에 통용됐던 ‘뉴스밸류’가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과거 뉴스의 영역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던 온갖 생활정보의 비중이 높아졌다. 신문사에서는 문화부의 한 영역에 불과했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우리사회에서 통용되는 전체 기사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물론 기형적인 제도와 시스템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기사냐”라고 쉽게 말할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독자들은 정부 발표를 과거처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뉴스 자체보다는 뉴스가 생산되는 방식이 더 뉴스가 된다. 기자회견장에서 누가 무슨 발표를 했는가보다 기자회견장 모습 자체를 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사와 기자가 자의적 잣대로 걸러내지 않은 ‘민낯’과 ‘날것’에서 팩트와 진실을 찾는 데 익숙해졌다.

     뉴스의 소비와 공급 패턴이 달라졌다는 점에 조금 더 주목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홍보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을 보고 있다”고 탓하면 곤란하다. 손가락에 눈길을 줬다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다. 잘못된 기사에 대응하는 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정정보도라는 방식으로 오보를 바로잡았다. 종이에 인쇄된 기사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뉴스는 수정할 수 있다. 세련되게 수정하면 호감까지 얻을 수 있다.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적군이 가장 든든한 아군으로 바뀌는 것이다. 20세기의 잣대로 뉴스밸류를 재단한 뒤 윽박지르다가는 여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정치불신은 저 멀리 동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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