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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역량의 창조

    기사 작성일 2016-06-22 10:18:39 최종 수정일 2016-06-22 10: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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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

     

    역량의 정의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서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은 인도계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센(A.K. Sen)에 의해 1980년대에 고안된 것이다. 이 접근법은 사람마다 행위 동기나 가치관이 다양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이 동일하더라도 개인별 역량에 따라 서로 다른 성취수준을 보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센은 삶의 질을 비교·평가하는 데 역량이 소득이나 자원보다 적절한 기준일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정의나 분배에 관한 이론은 대부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소득이나 자원)이나 그 충족 수준(후생이나 복지)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센의 접근은 분명 새롭다. 이 책의 저자 누스바움은 역량에 관한 센의 관점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에 대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서, ‘사회가 사람의 기본적 품위나 존엄성, 또는 정의를 지켜주는지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센의 관심이 역량 개념에 비추어 삶의 질을 비교·평가하는 데 있다면, 누스바움의 관심은 이 개념을 통해 인간의 기본적 품위나 존엄성, 또는 사회정의의 확보 여부를 비교·평가하는 데 있는 셈이다. 

     

    누스바움의 관심은 센의 관심에 비해 훨씬 더 정치철학적이다. 누스바움은 역량 개념을 인간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에 초점을 맞춰 이해한다. 이 경우, 행위주체성을 지닌 사람은 모두 동등한 인간존엄성을 갖고 있는 존재로 여겨지므로 법적·제도적으로 동등한 존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평가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량 접근법에 대해 ‘사람을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원칙을 옹호하고 각 개인의 역량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언제나 모든 사람을 똑같이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간의 모든 역량이나 삶의 조건이 동등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로 인간존엄성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자유의 영역을 보호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인간이 품위 있는 삶, 인간존엄성에 부합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10대 핵심역량(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 통제)의 최저수준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에서 10대 핵심역량은 이 접근법이 지닌 정치철학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역이자, 센의 역량 접근법과 가장 분명한 차이를 드러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누스바움은 자신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핵심 요소로 가정하는데 반해, 센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치관의 다양성을 인정할 경우 모든 사람에게 적용가능한 핵심역량 목록을 정의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으며, 센이 10대 핵심역량 목록을 정의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누스바움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수용할 경우 가치관의 다양성을 고려하면서도 정치적 의미에서 사회정의를 위한 최소기준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람이 역량 접근법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센은 공공정책의 지향점을 제시하면서도 민주주의 내부의 법과 제도적 구조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 반면, 누스바움은 최소한의 사회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법과 정치구조의 문제를 처음부터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10대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사회정의의 최저수준을 설명하고자 하는 정치철학서인 셈이다.

     

    사회정의나 분배의 문제를 역량에 비추어 판단할 경우, 빈곤은 단순한 소득결핍이 아니라 기본 역량의 결핍이다. 또한 빈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의 결핍이라는 의미에서 자유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빈곤 혹은 불평등을 사람들이 실제로 향유하려는 삶과 자유에 비추어 이해한다면, 역량 향상은 소득 향상이라는 단순히 도구적 맥락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센과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사회정의론의 핵심 과제인 자유와 평등의 조화 문제에 대해 분명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또한 누스바움은 정치철학적 접근을 통해 역량 개념을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제공한다. 이 책은 누스바움의 견해와 함께 역량 접근법 내부의 미묘한 견해 차이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원제 : Creating Capabilities
    저자 :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시카고대학교 법학, 윤리학 석좌교수)
    역자 : 한상연 
    출판사 : 돌베개
    출판일 : 2015. 12.
    쪽수 : 295
    서평자 : 이상호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고려대학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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