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판 환경에서 번역서를 구하고 실망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실 신문이나 인터넷의 서평을 보고 책을 구입하고는 거의 절반이상의 번역서들이 차마 읽고 이해하기가 불가능해서 버린 경우라고 할 정도였다.

 

원서를 읽으면 이해가 되니 필자의 이해력이 빈약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꼭 읽어야 할 좋은 책이라면 시간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번역서를 산 후에 영어로 된 원서를 사는 일도 드물게 있었다.

 

좋은 책에 좋은 번역이 드문 이유는 번역에 대한 높은 평가와 가치를 주지 않는 한국의 척박한 문화 실태가 근본적인 원인이므로, 굳이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좋은 번역서를 대하면 아낌없이 격려를 보내고 싶다. 최근에 읽은 '세렝게티 법칙', 이 책이 좋은 내용에 좋은 번역으로 꼽고 싶은 책이다.

 

'세렝게티 법칙'의 저자 션 B. 캐럴(Sean B. Carroll)은 미시 생물학이라 할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및 진화론의 대가라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역자는 조은영으로 역시 생물학을 전공한 연구원이라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훌륭한 번역을 해준 역자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세렝게티 법칙'은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첫 번째로 지구의 생태계가 프랙탈 구조를 닮았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작은 물 웅덩이에서도 생태계가 있으며, 이 작은 생태계와 더 큰 생태계인 숲, 숲을 넘어선 평야나 초원, 초원을 넘어선 대륙, 그리고 지구가 서로 닮은 구조임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모든 생명과 지구의 모든 물리, 화학, 생물 현상은 서로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둘을 관통하는 원리, 모든 뭇 생명체와 지구 환경을 연결하는 고리로 '항상성(homeostasis)'을 들고 있다. 세렝게티 초원은 매일 매일, 매시간 달라지고 있지만, 항상 비슷하다. 이는 세렝게티의 항상성이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로 매일 매일 다르지만,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사실 항상성이란 의학, 생물학, 철학, 신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을 총괄하는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 개념이다.

 

비록 의학에서 시작했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과연 같은 존재일까? 다른 존재일까? 분명히 어제 이후 먹고 자고 배설한 부분이 있으므로 달라졌고, 또 생각도 바뀌었다. 그러므로 어제의 나와 지금 현재의 나는 다른 존재가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나의 자기 동일성을 인식하고 있다. ‘세렝게티 법칙’은 환경과 생태계, 항상성과 존재에 대하여 성찰을 해줄 기회를 주는 좋은 책으로 진화와 환경, 의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원저 : Serengeti rules : the quest to discover how life works and why it matters
저자 : 션 B. 캐럴(Sean B. Carroll)
서평자 : 김승열 좋은선린병원 과장
서평자 추천도서 :     
애덤 하트데이비스,『파블로프의 개』, 시그마북스, 2016
션B.캐럴,『진화론 산책』, 살림출판사, 2012 
로빈 던바,『발칙한 진화론』, 21세기북스, 2011
마이클 셔머,『과학의 변경지대』, 사이언스북스, 2005
야마모토 요시타카,『과학의 탄생』, 동아시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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