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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기사 작성일 2017-06-22 10:28:13 최종 수정일 2017-06-28 13: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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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주소가 없는 당신에게

     

    그동안 책으로 간행되지 않은 신영복의 글과 강연을 모아 실은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는 그의 글을 읽어온 사람에게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신영복을 읽는 독법은 여전히 행간을 읽는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매년 봄마다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듯이 그 행간에서 독자 저마다의 독서가 생긴다는 사실에도 새삼 놀랄 것 같다. 

     

    12세기 이탈리아 시인들은 시의 행간에서 기쁨을 찾았다고 한다. 그들은 끝나지 않을 기쁨을 위해 시를 썼다. 스스로 행간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시를 한 편 한 편 써나갔고, 낭독했다. 시 읽는 모임을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만들었다. 신영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신영복의 글을 읽을 때면 그가 쓴 글이 아니라 그를 행간으로 삼는 독법을 떠올리게 된다. 이번 책에는 비교적 자세하게 '신영복의 대학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신영복은 20년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이 시절이 자신의 참다운 대학 시절이라 하면서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행간으로 삼아 시대를 읽고, 인간을 읽고, 자연을 읽고, 사회를 분석했다. 이 중에서도 신영복의 진가는 '인간'이 아닐까 한다. 그가 읽은 인간은 남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영복 안에서 아픔을 나누는 삶을 산다.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있는 수인이든, 지하철을 탄 승객이든 강의실의 학생이든, 신영복 세계에서 인간은 하나같이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따뜻한 관계에서 살아간다. 

     

    시인 랭보는 시를 썼다. "나는 20살까지 시를 썼다. 그 뒤론 그 시를 살았다". 신영복은 20년 세월동안 사람을 읽는 행간을 만들었고, 그 뒤로는 행간으로 살지 않았을까.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 어떤 관계에서 읽느냐 하는 것, 이것이 신영복의 대학 졸업장일 것 같다. 신영복은 '비자본적 공간에 남아 있는 작은 인정'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씨앗을 심고 가꾸는 농부처럼 우리 인간관계의 보편적 삶으로 전망한다. 지금 신영복을 읽는 이유도 어떻게 하면 신영복을 행간으로 삼을까 하는 궁금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는 끝나지 않을, 우리에게 던져줄 아름다움을 위해 스스로 행간이 되려고 한 것만 같다. 

     

    이 책에는 신영복이 암각화처럼 새긴 사람의 얼굴이 있다. "(감옥의) 추운 겨울밤을 뜨겁게 해후한 나의 친구들을 나는 사랑합니다. 애정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대상도 자신의 내부로 깊숙이 안아 들여 더욱 큰 것으로 키워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인간을 이토록 따뜻하게 볼 수 있는지 신영복의 글을 읽을 때마다 부끄럽기만 하다. 신영복은 왜 사람의 얼굴을 그리려고 하는 것일까. 이번에 신영복을 읽으면서는 부끄러움 뒤에 자유가 떠올랐다. "쓴다는 것이 필요할 때 우리는 자유롭다"(미셸 푸코). 신영복은 사람의 얼굴을 쓰면서 비로소 자유롭지 않았을까. 그가 자유롭지 않았다면 책을 읽는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사는 동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야 할 동물로 진화했다. 이런 동물에게 자유는 혼자 누리는 자유도 물론 있겠지만, 관계 속에서 누리는 자유도 있다. 신영복은 후자에 특히 주목한다. 신영복은 생전에 줄곧 존재론이 아니라 관계론을 설파했다. 이 책에도 관계론이 등장한다. 관계론을 찬찬히 읽으면서 신영복은 아마도, 관계 속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다 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편지가 들어 있다. 그런데 주소가 없다. 그는 '주소 없는 당신에게' 띄운 편지에서 우리가 사는 관계를 묻는다. 어디에서 사는지, 어떤 관계 속에서 나고 자라는지를 묻는다. 그는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는 관계에 주소가 있냐고 묻고, 곧이어 그 주소를 주변에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당부한다. 책을 읽으면서 신영복이 한 당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는 왜 주소가 없는 우리에게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 것일까.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어가는 먼 길에 다들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누구라도 자기가 사는 곳에서 인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디라고 따뜻하게 권유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고 그분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저자 : 신영복(前 성공회대 석좌교수)
    출판사 : 돌베개
    출판일 : 2017. 1.
    쪽수 : 386
    서평자 : 이영남 한신대 한국사학과 조교수(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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