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물 및 보고서

    홈으로 > 국회소식 > 발행물 및 보고서

    [서평]웃음의 가격은 얼마인가

    기사 작성일 2017-06-28 13:32:33 최종 수정일 2017-06-28 13:32:33

    •  
      url이 복사 되었습니다. Ctrl+V 를 눌러 붙여넣기 할 수 있습니다.
    •  
    웃음의 가격은 얼마인가(울리히 슈나벨).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신자유주의, 그리고 감정의 사회학

     

    제목과 책 표지 앞뒷면에 실린 카피만 보면 이 책은 흔한 자기계발서처럼 보인다. 실제로 카피는 책을 '감정사용 설명서'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책을 매우 다르게 읽었다. 왜냐하면, 개인화된 성찰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감정사용 설명서'라는 말과 달리 책은 정작 감정이 위치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논의에 더욱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감정의 사회학'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감정은 서양의 인식론에서 주변화돼 왔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증명할 수 없기에 엄정한 연구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성인 혹은 남성성의 세계에서도 감정은 생산성을 저해하는 비효율적인 영역일 뿐이었다. "변덕스러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냉철하게' 머리로 결정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이상적인 인간상이었다"(17p). 감정의 고급화된 완성물이라 할 수 있는 '문화'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산업화에 매진하던 1970년대의 한국사회에서 문화는 항상 뒷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영국 정부는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이라는 담론을 통해 문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문화적 전환은 당시 고비용·저효율의 영국경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하고, 이를 더욱 정당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즉, '영국병'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영국(인)의 문화를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적극적인 기업가정신(앙트러프러너십)의 문화로 탈바꿈하고자 한 캠페인이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게 된 '감정 통제의 제도화'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은 효율성 제고를 위해 감정노동을 강요하기 시작했고, 사회는 파편화돼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된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감정'에 관한 자신의 논의를 본격화하며, 공적인 가치보다 경제성만 따지는 현대의 여러 사회적 제도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가 감정의 외부적 조건에 집중한 이유는 대단히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감정이 실은 외부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를 떠올려보자.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이들도 미디어와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감정의 전염병에 기꺼이 감염된 바 있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일처리를 해야 할 조직도 구성원들이 서로를 형, 동생이라 부르는 순간, 비리를 눈감아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카멜레온 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놀랍게도 잘 맞추어 행동하고 타인을 모방한다. 결국, 개인의 행복과 성공은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그가 속한 공동체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다. "감정이 이성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127p).

     

    감정의 여러 영역 중에서 무엇보다 공감과 소통능력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한다. 이를테면 타인에 대한 수동적 연민(동정)이 구경꾼 역할에 머무는 것이라면, 공감은 타인의 곤경에 직접 뛰어들 준비가 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설명은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기를 연민하는 사람은 자신의 억울한 운명을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에 그친다. 반면에 자기에게 공감하는 사람은 한발 물러나 자신의 상황을 맥락적으로 성찰하고, 좋은 친구에게 하듯 자기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운다. 비참한 노동 조건에 처해 있다면, 불평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타인과 소통하고 대화해 구체적인 외적 문제를 개선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이 책은 번역이 매우 꼼꼼히 잘 돼 읽는 데 전혀 불편이 없었다. 독일인이 집필한 책이어서 독일 사회의 여러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최근 필자는 한 신문 칼럼에서 일반 직원과 고위 경영자 간 임금 격차가 10배 이상이 되면 안 된다는 독일의 사회적 의식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1985년 1대20이었던 일반직원과 고위관리자의 평균 연봉 비례가 약 30년 뒤에는 1대200으로 벌어졌다고 한다(227p). 비슷한 사례로 독일의 병원 조직에서 승진하는 사람은 환자들을 잘 돌보는 의사가 아니라,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하는 의사라고 한다(272p).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독일도 예외가 아니란 점이 조금은 씁쓸하다.

     

    원서명 : Was kostet ein Lächeln?
    저 자 : 울리히 슈나벨(Ulich Schnabel)(Die Zeit 기자)
    역 자 : 배명자
    출판사 : 새로운현재
    출판일 : 2016. 12.
    쪽수 : 386
    서평자 : 심두보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신문방송학 박사)


    '바르고 공정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 CCL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표시
      라이센스에 의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저작자 표시 : 적절한 출처와 해당 라이센스 링크를 표시하고 변경이 있을 경우 공지해야 합니다.
    • 비영리비영리 : 이 저작물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저작권 표시 조건변경금지 : 이 저작물을 리믹스, 변형하거나 2차 저작물을 작성하였을 경우 공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