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물 및 보고서

    홈으로 > 국회소식 > 발행물 및 보고서

    [서평]압축 고전 60권: '책알못'들을 위한 최소한의 교양 수업

    기사 작성일 2022-04-13 11:03:22 최종 수정일 2022-04-13 11:03:47

    •  
      url이 복사 되었습니다. Ctrl+V 를 눌러 붙여넣기 할 수 있습니다.
    •  
    573.압축 고전 60권.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압축할 수 없는 것을 압축하기

     

    "고전이 나에게 건네는 말: 인간은 늘 새로운 자기로 향하는 존재다.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무이자, 자유이다. 그러니 부자유할 수 없다는 숙명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151쪽)

     

    『압축 고전 60권』에 대한 서평을 의뢰받고, 인문학 전공 교수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고민을 잠깐 했다. 고전을 '압축'한다니, 그것도 무려 60권이나! 인류의 수천 년 지적 탐험의 결과가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고전을 단 몇 페이지로 요약하는 것은, 고전에 대한 모독이거나 독자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그럼에도 의뢰를 수락한 것은, 어떻게 그 많은 고전을 한 권의 책으로 '압축'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고, 항상 '원전'을 고집하고, 원전을 읽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읽지 않는 편이 낫다는 평소의 생각을 확인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에는 '책알못'들을 위한 최소한의 교양수업이라는 도발적인 부제가 붙어 있고, 저자 토마스 아키나리는 '진입장벽이 높은 난해한 지식들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친근하고 쉽게 설명'하는 '대형 입시학원의 인기강사'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럼, 그렇지. 제대로 된 학자가 이런 책을 썼을 리 없지. 책을 읽기도 전에 벌써 책과 저자를 무시하는 마음이 올라오고 있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중반은 원전에 대한 목마름이 지적 분위기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정치학이나 경제학, 철학 등의 스터디 모임은 유럽이나 특히 일본에서 재해석하고 정리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이었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편집되고 재해석된 해설서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다. 원전을 직접 읽어야 올바른, 혹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은 원전을 읽기 위해 독일어나 러시아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지적 분위기에서, 누군가 원전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더 나아가 원어로 읽었다면 더욱더, 그 사람의 주장에 권위가 부여되기도 했다. 이러한 원본 혹은 오리지널에 대한 목마름이 원전이 아닌 해설서나 요약본을 무턱대고 무시하는 경향을 낳았을 것이다.

     

    원전이 자기만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원전이 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고전'이라는데 있다.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은 책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전은 누구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고, 그중 몇몇은 읽으려고 시도했겠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문 책이다. 필자처럼 인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조차 자기 전공에 관련된 고전을 빼면 솔직히 고전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없다. 저자도 고전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20년 이상 걸리며, 읽을수록 의문이 늘어간다고,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괜한 허세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굳이 고전을 원전으로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도대체 원전을 읽는다는 것과 압축 고전이나 해설서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해설이나 압축은 원전의 다양한 가능성을 말살하고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하는 것이고, 원전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재미를 제거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라톤 같은 장거리 달리기는 무작정 달린다고 완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달리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크게 건강을 상하고 평생 달리기를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책 읽기도 일종의 기술이고, 차근차근 배우지 않으면 책이 담은 의미와 재미를 배우거나 느낄 수 없고, 심지어 책과 담을 쌓게 될 수도 있다. 책은 그냥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대화하는 것이므로, 먼저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만의 해석도 가능해진다. 초보자가 모든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고전을 읽는 것은 무작정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는 것과 같다. 고전은 숲과 같아서 무턱대고 들어서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필자도 지금은 학생들이 고전에 대해 물어오면 수준에 맞는 좋은 해설서를 추천하고 있다. 숲에서 길을 잃는 것보다는, 약간 둘러가더라도 숲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저자 역시 고전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고 바로 원전을 읽지 말라고 충고한다. 해설서를 읽고 나서 전문적 개론서로 가는 단계를 밟으라고 한다. 고전 독서도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서평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 책은 따로 서평을 할 수 없는 책이다. 이 책 자체가 고전에 대한 일종의 짧은 서평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압축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했고 장황하게 길어졌다. 이 책은 몇 가지 미덕을 갖는데, 무엇보다 고전 선정이 다양해서 이름만으로 알던 책들에 대해 맛보기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용의 구성이 사전처럼 체계적이라서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미덕이다. 마지막 미덕을 악덕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개념이나 문장에 밑줄을 그어 표시해서 급하게 책의 핵심 개념을 이해하고 써먹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유용해 보인다.

     

    이 책의 악덕(?)은 부제와 달리 '책알못'이 아니라 '책잘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고전이나 동서양 사상에 대한 선지식이 없으면, 원전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지루할 수 있다. 반면에 여기 나온 고전을 시도해 보았거나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다. 짧은 지면에 단지 기계적인 요약이 아니라 책의 의도와 핵심 사상이 잘 드러나게 정리한 저자에게 놀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최소한의 교양수업'이 아니라, '최소한의 교양'을 갖춘 사람을 위한 '수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자는 고전의 맛을 이미 알고 있어서 이 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필자로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저자: 토마스 아키나리(작가)
    역자: 오민혜
    출판사: RHK
    출판일: 2021. 10.
    쪽수: 358
    서평자: 이원봉(가톨릭대학교 교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지은이: 토마스 아키나리
옮긴이: 한주희
시그마북스2022
379 p.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 한주희 옮김 / 시그마북스2022 / 379쪽

     

    지은이: 토마스 아키나리 
옮긴이: 오근영
RHK
317 p.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 오근영 옮김 / RHK / 317쪽


    '생생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 CCL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표시
      라이센스에 의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저작자 표시 : 적절한 출처와 해당 라이센스 링크를 표시하고 변경이 있을 경우 공지해야 합니다.
    • 비영리비영리 : 이 저작물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저작권 표시 조건변경금지 : 이 저작물을 리믹스, 변형하거나 2차 저작물을 작성하였을 경우 공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