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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소유의 기원: 여성 의상의 경제학

    기사 작성일 2022-07-27 09:13:08 최종 수정일 2022-07-27 09: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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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약탈, 소유, 그리고 과시를 통해 본 자본주의의 본성

     

    "소유권은 야만시대 초기 단계에 처음으로 발생했고, 소유권 제도는 평화로운 생활습관이 약탈적인 생활습관으로 이행하면서 출현했다."(77쪽)

     

    '의복'과 '의상'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전자가 단순히 인간 삶의 필수요소인 의식주에 해당하는 '옷'을 지칭한다면, 후자는 수많은 기호와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패션'을 가리킨다. 의상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신체를 보호하는 원초적 기능 이외에 부가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특히 과시적인 의상은 '가진 자의 지위'를 드러내 주는 표식과도 같다. 당장의 생존과 직결된, 즉각적 필요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본질로 하는 '낭비와 사치'는 이를 수행하는 행위자들이 갖는 금전적·시간적인 여유로움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식의 한정판 실크드레스에 12㎝ 하이힐을 신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착용해 남다른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여성을 상상해 보자. 여러분에게 이 여성은 어떤 존재로 지각되는가?

     

    의상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추적한 베블런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소유자를 편안하게 해주지도 않고, 소유자에게 아무런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는 값비싼 제품을 과시하여 자신의 소비력을 입증해 왔음을 지적한다. 이같은 비생산적 소비 실천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단위의 금전적 위력을 드러내는 것이 '여성의 기능'이 되었음에 주목한다. 베블런에 따르면, 사회단위가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가부장제 사회에서(여성은 남성의 소유로 간주되기 때문에) 여성의 의상은 남성의 부(富)를 나타내는 지표 역할을 했다. 사회단위가 가구로 구성된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의상은 그 여성이 속한 가구의 부를 상징한다. 가부장제 관념이 명목적으로 소멸한 오늘조차도 여성의 의상을 착용한 사람, 즉 여성은 하나의 소유물로 간주되고 있다.

     

    '소유물로서의 여성'이라는 관념은 야만시대 초기에 처음으로 발생한 소유권 제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평화로운 생활습관이 약탈적으로 변모하며 출현한 소유권은 '강압과 압류' 습관의 소산으로, 포획한 여성을 전유하던 야만시대의 습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상 '정당한 것'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의 혼인 형태는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테제 아래 자행된, 약탈한 여성과의 강압적 혼인이 관습화되고 대중화되면서 도덕적인 승인을 받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근본적인 수준에서 여성에 대한 소유와 통제는 이같은 약탈의 문화화(化)에도 결국 남성의 '용맹성과 높은 지위를 입증하는 증거'라는 본래적 속성으로 귀결된다.

     

    무엇보다 소유권은 산업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착취생활을 하는 계급의 특권이었다. 이것은 베블런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 "노동은 열등한 사람의 표식일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징표"라는 말과 동의어다. 남성의 미적 감각과 명예심을 대리 충족시켜 주는 여성의 의상은 그것이 '어떤 직업에도 어울리지 않음'을, 즉 해당 여성이 '그 어떤 경제활동(노동)과도 무관함'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것은 여성 의상의 첫 번째 원리인 '비싼 것'(사치품을 과시하는 것)과 두 번째 원리인 '새로운 것'(유행을 따라가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의상을 대체할 수 있는 낭비력)에 이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세 번째 원리로 수렴된다. 이 원리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 바로 이것이 베블런이 이야기하는 여성 의상의 경제학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당대의 학문 장(場)에서는 특별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관통하는 약탈, 소유, 과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차별화에 관한 이야기들이 농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베블런이 이끄는 대로 그의 글을 한 장 한 장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 하는 많은 것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가부장제나 사유재산권 같은 강력한 신화들의 임의성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수많은 '당연함'들이 사실은 '우연함'의 오랜 습관화에서 비롯됐으며, 과거의 제도에서 발달해 온 문화적 사실이자 역사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베블런의 눈부신 통찰력에 있다.

     

    저자: 소스타인 베블런(경제학자)
    역자: 정헌주
    출판사: 간디서원
    출판일: 2022. 1.
    쪽수: 212
    서평자: 김수정(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588. 유한계급론.jpg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 박홍규 옮김 / 문예출판사, 2019 / 389쪽

     

    588. 구별짓기.jpg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 최종철 옮김 / 새물결, 2005 / 10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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