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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Q&A]"국회의사당 설계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주세요!"

    기사 작성일 2019-02-15 15:19:19 최종 수정일 2019-02-15 15: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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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광주광역시에서 국회를 방문한 최은혁(13) 군은 국회뉴스ON에 "국회의사당 건물 외형이 독특한데 누가 건물을 디자인했나요? 어떻게 설계된 건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세요!"라는 질문을 보내왔습니다. 국회의사당이 태평로에서 여의도로 이전된 배경은 무엇인지, 어떻게 설계되고 지어졌는지 국회뉴스ON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A. 태평로에 있던 국회의사당을 여의도로 이전한 것은 1975년입니다. 원래 극장건물이었던 태평로의사당은 국회의사당으로 쓰기에 좁았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와 사적지인 사직공원, 미군이 주둔하던 용산기지 내 골프장, 해병대 사령부, 여의도 등 10여곳이 새로운 국회의사당 건립 대상후보지로 꼽혔지요.

     

    1966년 5월 새로운 국회의사당을 세운다는 계획이 세워지면서 제시했던 건립원칙은 네 가지였습니다. ▲남북통일을 대비하자 ▲양원제 운영이 가능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상징할 수 있는 역사적인 대규모 건물로 짓자 ▲국내 기술진으로 건설하자 등이었는데요. 초기에는 후보지 10여곳 가운데 여의도가 후순위였습니다. 여의도는 당시 허허벌판이었고, 홍수피해가 잦았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부터 비행장으로 사용된 공군시설이 들어서 이전비용이 많이 들었고 교통여건도 나빴습니다.

     

    이후 1967년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이 발표되면서 여의도가 유력한 후보지로 떠올랐는데요. 밤섬을 폭파해 둑을 만들고 시범아파트 등 신도시를 조성하며 마포와 여의도를 연결하는 제4한강교인 마포대교를 건설하려는 서울시 계획에 힘입어 여의도가 최종 국회의사당 건립지로 확정되었지요.

     

    지명작가가 제출한 설계안과 공모전을 통해
    지명작가가 제출한 설계안과 공모전에서 선정된 설계안. 1차 기본설계안은 지명작가와 공모전 우수작가가 모여 공동으로 구상, 제출했다.

     

    우리 손으로 짓기로 한 국회의사당 건립에는 규모와 상징성으로 인해 설계부터 많은 이들이 참여했습니다. 작가를 지명해 설계를 의뢰하는 한편 일반공모도 병행했지요. 지명된 작가 중 3인이 설계안을 제출했고 공모전에서는 안영배 등이 우수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최종 설계안을 선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요. 결국 지명작가와 우수작가가 모여 공동안을 제출하기로 하고 1968년 12월 7일부터 25일 동안 기본설계를 완료했습니다.

     

    1차 설계안은 중층 캐노피에 기둥이 있는 형식이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회처럼 돔을 얹자는 의견이 더해지고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5층)보다 높아야 한다는 요구가 추가됐습니다. 이에 1차 설계안보다 좁고 더 높게 수정된 설계도가 1969년 안성되었습니다.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에 드디어 국회의사당 건설이 시작됐습니다. 1차 골조공사부터 7개의 건설사가 치열하게 경합했고 낙찰된 건설사로부터 '절대 하청을 주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국회전경.
    국회 전경. 미국의회처럼 돔을 얹자는 의견이 더해지고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5층)보다 높아야 한다는 요구가 추가돼 현재의 여의도 국회의사당 설계가 완료됐다.

     

    우리의 자금, 기술, 자재만으로 새 의사당을 짓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요. 우선 화강석 4만3000㎡, 대리석 2만7000㎡가 사용된 '돌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전국을 뒤져 어렵게 찾은 석공 250여명이 공사를 시작했지만 완공 무렵에는 프로급 석공이 2000여명으로 늘었지요. 공사 현장이 석공 양성소였던 셈입니다.

     

    돔을 올리는 공사도 난제 중 하나였는데요. 돌 자체의 무게만 1000톤에 달했으며 이런 거대한 무게를 지붕 위에 올리는 것이 당시 국내에서는 처음이었습니다. 하중 분산 모의실험만 일본에서 해보고 실제로는 국내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결국 돔을 올리는 데 성공했지요. 마침내 1975년 8월 15일 광복절에 국회의사당 준공식이 거행됐습니다. 장장 2200여일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총 투입된 예산은 135억원, 1975년 당시 국가예산의 1%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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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뉴스ON 이상미 기자 smsan@assembl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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