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물 및 보고서

    홈으로 > 국회소식 > 발행물 및 보고서

    [서평]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

    기사 작성일 2021-03-10 09:23:39 최종 수정일 2021-03-10 09:23:39

    •  
      url이 복사 되었습니다. Ctrl+V 를 눌러 붙여넣기 할 수 있습니다.
    •  
    518.(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홍경래 난의 원인은 '계급'이 아닌 '지역 차별'이었다

     

    "실증을 바탕으로 말하면 홍경래 난의 과정에서 소작인과 토지를 갖지 못한 노동자를 포함해 억압받은 계급이 지주 같은 자신들의 윗사람에 맞서 폭력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1차 자료는 거의 없다. 사실 반란을 조직한 것은 농민이 아니라 지역 지배층이었다. 그리고 이런 지역 지배층은 정석종이 도식화한 대로 사회적 상승을 통해 향청과 무청에서 자리를 얻은 경영형 부농이 아니었다."(293페이지)

     

    왕조시대의 '난(亂)'들을 재해석하는 것은 한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 있는 주제였다. 이 과정에서 '난'은 '농민전쟁'이나 '혁명'으로 재해석되곤 했다. 홍경래 난은 19세기 초 조선에서 그런 혁명의 주체가 될 만한 계급이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북한이나 국내의 급진 좌파세력들은 홍경래 난의 주체로 기층 민중에 주목했다. 일부 국내 학자들은 난에 참여한 상인이나 부농(富農) 계층에 주목해서 '경영형 부농'을 그 주체로 상정했다. 이는 프랑스혁명 등 근대혁명을 가능케 했던 신흥 부르주아와 유사한 계층이 조선 말기에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었다는 주장인 셈이었다.

     

    이쯤 되면 사학계의 홍경래 난 '다시 보기'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 짐작이 간다. 바로 '식민사학 극복'이다. 해방 이후 식민사학의 극복은 남북한 사학계 공통의 과제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조선이 그 후기부터 보편적 역사발전법칙에 상응하는 자생적 근대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을 숙제로 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이 많았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의 소산이기도 했기에, 내심 마르크스주의혁명을 꿈꾸는 사학도들은 다투어 정체성론 연구에 투신했다. 그 결과 ‘경영형 부농’ 이론 같은 것이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실증연구를 통해 그런 자본주의 맹아(萌芽)는 없었다는 냉철한 인식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계 미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홍경래 난을 계급혁명적 관점이나 정체성론의 극복 차원에서 해석해 온 한국 사학계의 흐름에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는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인 여러 가지 요인들을 두루 검토하면서, 난의 가장 큰 원인은 조선왕조의 서북인들에 대한 차별에 있었다고 역설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의 1부에서 조선의 서북지역 지배세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성장해 왔는지를 면밀하게 고찰한다. 특히 16세기 이후 이 지역에서 성리학이 널리 확산되면서 문과 급제자들도 급증했지만 평안도 출신들의 출세에 한계가 있었음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소외된 지배층'의 출현과 그들의 좌절감이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근인(根因)이었음을 밝힌다. 이 지역 출신으로 종2품 한성부 좌윤까지 올라갔던 백경해가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서 "한 아버지와 여덟 아들이 함께 사는데 아들들의 귀천과 비척(肥瘠)이 어찌 그리 다르단 말입니까?"라고 호소한 것이나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면서 격문에서 "조정은 분토(糞土)를 버리듯 평안도(西土)를 버렸다"고 외친 것은 그러한 정서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상당한 정도의 자율을 누리던 지방 행정·재정·경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섭이 강화되는 현실에 대한 지방 세력의 반발, 흉작과 관(官)의 수탈, 『정감록』 같은 예언적 신앙의 전파 등도 홍경래 난의 원인들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부에서는 반란의 전개와 실패, 반란주체세력과 반(反)반란세력의 성격 등에 대해 분석하는데, 저자는 홍경래 난에서 특별히 '계급적'인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근래 보면 국내 사학계에서 '식민사학 극복' 차원의 성취로 높이 평가받으면서 한동안 정론의 자리를 차지했던 주장들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 신흥사대부나 사림의 성격을 둘러싼 논의들, 자본주의 맹아론과 관련된 주장들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국내의 기존 한국사 인식을 깨는 연구 결과들을 내놓은 사람들은 제임스 팔레, 존 B. 던컨, 마르티나 도이힐러 등 외국의 한국사 연구자들이었다. 한국의 사학자들이 민족적 혹은 민중적 입장에서 '있어야 할 당위(當爲)로서의 역사'에 집착하고 있었을 때, 그런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의 한국사 연구자들은 '있었던 사실로서의 역사'를 연구했고, 이제 그 성과가 국내로 역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홍경래 난의 가장 큰 동인(動因)이 지역차별이었다는 저자의 결론은 우울하다. 임시정부 시절 기호파와 서북파의 갈등, 남북분단과 대결의 뿌리가 조선시대 서북인에 대한 차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분단 상황 아래서 대한민국은 또 다른 지역갈등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저자: 김선주 하버드대학교 하버드-옌칭 기금 교수
    역자: 김범
    출판사: 푸른역사
    출판일: 2020. 09.
    쪽수: 343
    서평자: 배진영 조선뉴스프레스 월간조선 기자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정병석 지음
시공사, 2016
491 p.
    정병석 지음 / 시공사, 2016 / 491p

     

    조윤민 지음
글항아리, 2016
365 p.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2016 / 365p

     

    '바르고 공정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 CCL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표시
      라이센스에 의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저작자 표시 : 적절한 출처와 해당 라이센스 링크를 표시하고 변경이 있을 경우 공지해야 합니다.
    • 비영리비영리 : 이 저작물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저작권 표시 조건변경금지 : 이 저작물을 리믹스, 변형하거나 2차 저작물을 작성하였을 경우 공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