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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법안]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20대 국회 처리될까?

    기사 작성일 2018-05-11 17:11:58 최종 수정일 2018-05-11 17: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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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령에 의한 구속…위헌·위법성 가려내야
    보조금·근무평점 때문에 무고한 시민 무차별 감금
    "구타·성폭력·살인 등 인권유린 처벌과 보상돼야"
    국가인권위, 국회 논의 및 처리 촉구 결정문 

     

    "3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밤에 불을 끄고는 잠을 잘 수 없다. 누군가 뛰어 들어와 잡아갈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겨울철 차가운 세면바닥에서 물고문을 당한 탓에 지금도 한 여름에 찬물로 샤워를 하지 못한다. 한창 공부하며 배워야 할 시기에 배우지 못한 탓에 취직도 할 수 없었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일밖에 할 것이 없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한종선 씨는 지난 2015년 7월 3일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 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 공청회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한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84년, 부산 사상구 주례동의 형제복지원 수용소에 감금돼 노역과 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우리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짐승처럼 살아야 했는지 알고 싶다"며 "진상규명이 될 수 있게 법 통과를 서둘러 달라"고 촉구했지만,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원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가 부랑인을 관리한다는 목적 하에 민간인 약 3000여명을 강제 수용하고, 감금·노역을 시킨 사건이다. 형제복지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36곳에 달하는 부랑인 수용시설에는 약 1만 6125명이 수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부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 410호(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를 마련하고, 사회 부적응자와 부랑인 등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사회정화작업을 실시했다. 이때 부산시와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맺고, 부랑인과 시민들을 잡아들였으며, 국고보조금 등의 지원을 받았다. 

     

    지난 2016년 4월 2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박순이(46)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016년 4월 2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박순이(46)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위헌적 공권력 남용…길에서 잡혀온 시민 수천명 감금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먼저, 정부가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민간인을 강제 수용하는데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유신헌법에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 체포·구금·강제노역 등을 받지 않을 자유가 규정돼 있었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공청회(이하 공청회)에 참석한 조영선 변호사는 "법률이 아닌 훈령에 의한 체포·격리·구금 등은 헌법 10조 등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다"며 "헌법의 권리를 구체화한 형법과 형사소송법도 위반한 것으로 재론의 여지조차 없다"고 힘줘 말했다.

     

    1989년 재판에 넘겨진 형제복지원의 박인근 원장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업무상 횡령과 초지법 위반 등의 혐의만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원이 선고됐고, 이후에도 수차례 재판 끝에 2년 6개월 형을 받았다. 불법감금은 정부훈령에 근거한 정당행위로 보고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재판의 부실수사나 편파판결도 원인이었지만, 당시 수용시설에 사람들을 들인 것이 '법령에 의한 적법한 수용보호'였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무부훈령은 사회복지사업법, 생활보호법, 심신장애자복지법 등에 근거해 제정됐다고 한다. 당시 생활보호법에는 보호대상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어 대량으로 민간인을 수용한 데 대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문제는 훈령자체의 위헌성을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근동 변호사는 "내무부 훈령이 법률상 근거없이 제정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면서 "법령에 근거한 행위로 면피 가능성이 있는 국가기관의 강제수용 조치행위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내무부훈령 자체의 위법성을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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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주례동 산 18번지에 위치한 형제복지원의 모습

     

    내무부 훈령에 따라 수용된 피해자들은 부랑인이 아닌 일반시민들도 다수 있었다. 당시 훈령에 따르면 일정한 정주 없이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해 구걸 또는 물품을 판매하는 걸인, 껌팔이 등을 부랑인으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부산역 등지를 배회하다 잡혀온 이가 있는가 하면, 한종선 씨처럼 경찰서에서 영문도 모른 채 수용소로 끌려오기도 했고, 심지어 집에서 텔레비전(TV)을 보다가 잡혀온 이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수사검사는 수용자 가운데 구호를 받아야 할 사람은 10%가 안됐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분별한 체포 및 감금이 이뤄진 이유는 1인당 계산되는 국고보조금을 더 타내기 위한 꼼수와 경찰의 지원 등이 있었다. 조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신민당 조사보고서를 인용해 "경찰내부 근무평점에서 구류는 2~3점, 입소는 5점이었다"며 "1986년 전체 수용자 3975명 가운데 경찰로부터 수용의뢰를 받은 것이 3117명, 구청이 253명이었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내의 인권유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 한종선 씨는 공청회에서 수용소 내부의 일상을 상세히 전했다. 그가 밝힌 수용소의 생활은 인간 이하의 삶이었다. 새벽 4시께 기상해 군대처럼 중대장과 소대장으로부터 인원점검을 받고, 굵은 소금 한 줌과 물 3바가지로 세면을 끝내야 했다. 식사시간은 30분으로 규정돼 있었지만, 이마저도 선착순 집합 등에 걸리지 않으려면 5분을 넘길 수 없었다. 구타는 일상이었고, 성폭행도 서슴없이 자행됐지만 제지는 없었다. 간질이 있던 한 수용자는 발작 증세에도 구타를 당하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사실상 살인이었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약 3000여명이 수용됐고, 513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유족 등 200여명만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0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행자부 "진실·화해법으로 처리가능"…상임위서 보류→임기만료 폐기

     

    19대 국회인 2014년 7월 15일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 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진 의원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실질적인 보상을 통해 이들의 생활안정과 인권신장을 도모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고 설명했다.

     

    제정안은 피해자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두고, 구성 1년 이내에 피해자와 가족 등으로부터 진상규명을 신청받도록 했으며, 피해자와 유족에게는 보상금과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주거복지시설 등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조사가 이뤄져도 되는데, 형제복지원 사건만 따로 특별법을 만들면 다른 사건도 우후죽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한 이유였다. 당시 안전행정위원회(현 행정안전위원회) 안전행정 소위원회는 2차(2014년 11월 12일)와 4차(2015년 11월 27일)에 걸쳐 법안을 심사했지만, 정부는 진실 화해법에 의해 처리될 수 있었다는 답을 반복했다.

     

    2차 소위에서 정구창 안전행정부 사회통합지원과장은 진상규명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 "보상을 전제로 한 특별법 제정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든지 타 과거사 사건과의 형평성, 국가재정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4차 소위에서는 정부의 입장이 보다 명확해졌다. 정재근 행정자치부 차관은 "정부 측에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거 대부분의 과거사에 대해 진상규명이 됐다"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여타 사건과 형평성을 고려하고 국민적 합의 선행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부 의원들 역시 공론화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법안 심사를 '보류'했고, 결국 19대 국회서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20대 국회서는 통과될까?…진선미 의원 다시 발의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호 법안으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을 다시 꺼내들었다. 진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뉴스O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언론에서 크게 다뤄주고 해서 '이제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벌써 훌쩍 5년이 지났다"며 "하루빨리 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그동안 너무 희망고문을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의원은 19대(54인) 보다 19인 늘어난 73인이다.

     

    20대 국회에서는 달라질까? 지난 1월 1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에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에 대한 의견표명과 강제실종보호협약 가입을 권고'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보내왔다. 이는 2013년 12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30여명이 국가인권위에 형제복지원에서의 강제입소, 학살, 폭력, 성폭력, 강제감금 등에 대한 조사를 원한다는 진정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국회의장에게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등 구제를 위해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한 조속한 논의를 통해 법률이 제정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교흥 사무총장이 지난 1월 19일 국회 정문 앞 농성장에서 한종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를 만나 인사하는 모습(사진=김지범 촬영관)
    김교흥 사무총장이 지난 1월 19일 국회 정문 앞 농성장에서 한종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를 만나 인사하는 모습(사진=김지범 촬영관)

     

    올초에는 김교흥 당시 국회사무총장이 국회 정문에서 농성중인 한종선 씨를 만나 면담했다. 한 씨는 "국가에서 진상조사를 하고 바로잡겠다고 하는 순간 (숨어있던) 피해자는 엄청나게 나올 것"이라면서 계류된 법안의 통과를 당부했었다. 법무부도 손을 걷어 부칠 모양새다. 법무부·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지난 2월 6일 형제복지원 사건 등에 대해 재조사 할 것을 권고했고, 지난 4월 12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비상상고를 결정했다. 비상상고는 형사재판의 판결이 확정된 이후 심리가 잘못됐을 때 다시 재판을 신청하는 비상구제 절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원대회에서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었다.

     

    국회 앞에서 농성중인 한 씨는 지난 1월 기자와 만나 "피해자들이 지병이 많아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쓴 웃음 뒤에는 긴 희망고문으로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피해자들이 쓴 웃음이 아니라 후련한 마음으로 미소지을 수 있도록 국회도 관련 법안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바르고 공정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박병탁 기자 ppt@assembl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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