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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이슈브리프]유럽과 한국의 R&D 패러독스 논의 동향

    기사 작성일 2023-04-24 07:54:49 최종 수정일 2023-04-24 07: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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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와 기업이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은 그로부터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의 경제 성장을 견인할 새로운 혁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로 다른 곳의 지출을 줄여가면서까지 남들보다 더 많이 R&D에 투자했는데, 거기서 나오는 경제적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일단 이해가 잘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겪은 나라들이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붙인 이름이 'R&D 패러독스'이다. 이 용어는 큰 틀에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국가마다 등장한 시기와 관심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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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러피언 패러독스(European Paradox)는 없다지만 그것이 더 문제

     

    가장 먼저 답답함을 표현한 곳은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다. EC는 1994년과 1995년 보고서를 통해 "유럽의 과학적 성과는 미국만큼 탁월한데, 이를 경제적 성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이후 여러 학자들이 과학 논문 성과들을 검토해본 결과 단순 논문 수는 유럽이 앞서지만, 피인용도나 고인용 논문 수 등 질적 지표에서는 유럽이 매우 뒤쳐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European Paradox에서 "과학적 성과는 탁월하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되어서 패러독스는 해소되었지만, 문제는 더 커졌다. 이제 과학적 성과와 경제적 성과 모두 나쁘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단, 논문의 피인용도에 대한 분야별 분석에서 '천천히 변하는 성숙 분야'(물리, 공학, 수학)는 유럽이 앞서고 '빨리 변하는 신생 분야'(ICT, 바이오메디컬)는 미국이 앞선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럽은 여기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닮은 스웨디시 패러독스(Swedish Paradox)

     

    1990년대 초 극심한 경제위기를 거친 스웨덴은 1996년 무렵 "R&D 투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데, 경제적 성과는 빈약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이를 Swedish Paradox라고 불렀다. 1991년 스웨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R&D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였지만(2001년에는 1위), 첨단기술 제품의 생산과 수출, 경제성장률 등의 지표는 다른 나라와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Swedish Paradox의 원인을 주로 대기업 중심 산업구조에서 찾았다. 스웨덴은 다국적 대기업들이 산업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고, 국가 총 R&D의 61%를 대기업들이 수행한다. 연구의 방향이 혁신보다는 기존 대기업의 사업 영역을 강화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제반 제도들도 기존 기업에 유리하게 진화되어 있다. 또한 상위 50대 기업 중 1970년 이후 설립된 기업은 1개에 불과할 정도로 산업구조가 정체되어 있고, 사회 전반에 기업가정신이 부족해서 창업도 활발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발명된 특허는 교수에게 귀속되는 제도를 오래 유지해서 대학으로부터의 기술이전이나 창업이 미국처럼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단, 유럽의 경우와 비슷하게,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분야에서는 패러독스가 존재하고 느리게 성장하는 산업 분야에서는 패러독스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국은 아직 본격적인 검증 연구가 없어

     

    한국은 1997년에 경제위기를 겪었고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다는 점에서 스웨덴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도 GDP 대비 R&D 투자가 OECD 국가 중 1, 2위를 다툴 정도로 R&D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사업화 실적 등 경제적 성과 순위는 매우 낮게 나타나는 문제가 지속되자 2010년대부터 이를 Korea R&D 패러독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로 언론의 기사나 칼럼의 형태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을 뿐 유럽이나 스웨덴의 경우처럼 학술적으로 이를 검증하는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런 연구가 추진된다면, 유럽과 스웨덴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국가 R&D 규모와 주체별 분포를 확인하는 동시에 과학적 성과와 경제적 성과를 나누어서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R&D 성과의 우수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적절한 지표의 선택이 필요하고, 기술 분야나 산업 섹터별로 구분해서 패러독스의 존재 여부를 분석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R&D 투자에서 경제 성장까지 가는 길은 긴 여정이고 수많은 변수가 개입된다. 따라서 R&D 투자와 경제 성장 사이에 비례적이고 즉각적인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면에서 패러독스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R&D 투자가 많은 것과 경제적 성과가 빈약한 것은 모순적이지 않고 얼마든지 양립가능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는 R&D 투자와 경제적 성과 사이에 있는 여러 변수 중 어느 것이 가장 문제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 김석관은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이오 산업, 스타트업 생태계, 4차 산업혁명 등 산업혁신 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오고 있으며,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의 탈추격 혁신 모델을 찾는데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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